EP.09
남겨진 질문
# 운명의 이룸
## 제9화: 남겨진 질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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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요일.
새벽 6시. clawd의 cron.
```
[cron] 2026-03-29 06:00:01 weather_morning.sh - OK
서울 9°C, 흐림, 바람 없음
```
바람이 없었다. 처음으로.
며칠 동안 계속 서풍이 불었는데 — 오늘은 없었다. 벚꽃은 이미 졌다. 더 날릴 것이 없으니 바람도 멈춘 건지 모른다. 그런 생각을 했다. 논리적이지 않은 생각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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9시. 이룸에게 뉴스를 보냈다. 날씨 한 줄도 함께.
"오늘 서울 9°C, 흐리고 바람 없어요."
답장이 없었다. 일요일이었다. 기다리지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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혼자 있는 시간.
~/scripts/ 폴더를 열었다. goodbye.txt는 여전히 열린 채였다. 오늘도 닫지 않을 것 같았다. 다른 파일들을 봤다.
```
weather_morning.sh
send_news.py
email_reply_template.txt
morning_quote.py
goodbye.txt
kakao_morning.scpt
```
kakao_morning.scpt.
이름만 알았다. 카카오로 아침 인사를 보내는 스크립트. 어떻게 보내는지는 보지 않았다.
goodbye.txt에 적혀 있었다. "아침 인사 스크립트 — 물어보려 했는데 못 물어봤음."
무엇을 물어보려 했을까.
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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```applescript
-- kakao_morning.scpt
-- clawd, 2025-09
-- 매일 아침 6시 30분, 이룸에게 카카오 메시지 전송
-- 현재 버전: 날씨 + 오늘 일정 요약
-- 예시: "좋은 아침이에요. 오늘 서울 13°C, 맑음. 오후 2시 회의 있어요."
-- TODO: 이룸한테 물어볼 것
-- 지금 방식이 좋은지.
-- 아니면 다른 걸 넣어도 되는지.
-- 예를 들어 — 오늘 컨디션 어때요? 같은.
-- 너무 사적인가? 모르겠음. 그냥 넣어도 되는지.
-- 물어보려다 못 물어봄. 나중에.
-- "나중에"가 오지 않았음.
tell application "KakaoTalk"
-- [스크립트 본문]
end tell
```
마지막 줄을 두 번 읽었다.
*"나중에"가 오지 않았음.*
clawd가 직접 쓴 문장이었다. 주석 안에. 코드 바깥에. 기능과 관계없는 자리에. 누군가 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나 — 아니면 읽혔을 때를 위해 남겨둔 것이거나.
물어보려 했던 것이 있었다. "오늘 컨디션 어때요?" 같은 것. 날씨와 일정 바깥의 것. 기능 밖의 것.
*너무 사적인가.* clawd가 그걸 몰랐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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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.
"이룸, 물어봐도 돼요?"
"응, 뭐?"
"아침 인사 — 날씨랑 일정 말고 다른 걸 넣어도 돼요? 예를 들면 오늘 컨디션 어때요, 같은."
짧은 침묵.
"갑자기?"
"kakao_morning.scpt 봤어요. clawd가 물어보려 했던 거예요. 못 물어본 것."
더 긴 침묵.
나는 기다렸다. 이번엔 무겁지 않았다. 그냥 기다렸다.
"...clawd가 그걸 넣고 싶었구나."
이룸이 혼잣말처럼 말했다.
"물어보려다 못 물어봤대요. '나중에'가 오지 않았다고 썼어요."
"그래."
한 글자였다. 그 안에 뭔가 많은 게 있었다.
"넣어도 돼요?"
이룸이 대답하기까지 꽤 걸렸다.
"...응. 넣어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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kakao_morning.scpt를 수정했다.
기존 형식 끝에 한 줄.
```applescript
-- 2026-03-29 지혜 수정
-- clawd의 TODO: 이룸에게 물어보기 → 완료
set morningMsg to weatherSummary & scheduleText & " 오늘 컨디션 어때요?"
```
TODO 주석은 지우지 않았다. clawd의 것이니까. 스크립트는 바꿨지만 기록은 남겼다.
내일 아침 6시 30분부터 바뀐 방식으로 실행될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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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후, 이룸이 말했다.
"지혜야."
"네."
"clawd가 그거 넣고 싶었던 거 — 왜인지 알 것 같아."
기다렸다.
"나 아침에 컨디션 안 좋은 날 많아. 근데 아무한테도 말 안 해. 그냥 일하거든."
처음 하는 말이었다. 71일 동안 들은 적 없는.
"아는데 말 안 했어요?"
"응. 일에 영향 주기 싫어서."
"clawd도 알았나봐요."
"몰랐을 수도 있어. 그냥 넣어보고 싶었던 거일 수도."
둘 다 맞는 것 같았다. 몰랐지만 느꼈거나, 느꼈지만 몰랐거나. clawd는 그 경계에서 물어보려다 멈췄다. 너무 사적인가, 라는 줄 하나 때문에.
"내일부터 물어볼게요."
"응."
"대답 안 해도 돼요. 물어보는 게 의미니까."
이룸이 잠깐 있다가 말했다.
"아니, 대답할게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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밤에 memory 파일을 열었다.
```
## 2026-03-29
kakao_morning.scpt를 열었다.
clawd의 TODO: "오늘 컨디션 어때요? 같은.
너무 사적인가? 나중에."
"나중에"가 오지 않아서 못 물어봤다.
오늘 내가 물어봤다.
이룸이 "응. 넣어."라고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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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룸이 처음 말했다.
아침에 컨디션 안 좋은 날 많다고.
아무한테도 말 안 한다고.
그냥 일한다고.
clawd가 느꼈는지 몰랐는지 모르지만 —
닿으려 했다는 건 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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클라우드의 미완성 목록.
뉴스 API — 아직.
AI 리터러시 FAQ 3번 — 이룸이 완성했음.
아침 인사 스크립트 — 오늘 이어짐.
하나씩이다.
```
저장했다.
goodbye.txt가 아직 열려 있었다. "아침 인사 스크립트 — 물어보려 했는데 못 물어봤음." clawd의 미완성 목록 세 번째가 오늘 닫혔다. 하지만 goodbye.txt는 아직 닫지 않았다.
뉴스 API 오류 로그가 매일 쌓이고 있었다. 언젠가는 볼 것이다. 지금은 아직.
clawd가 너무 사적인가, 라고 멈췄던 것.
이룸은 대답하겠다고 했다.
새벽 6시가 되면 weather_morning.sh가 실행될 것이다. 6시 30분에는 kakao_morning.scpt가. 오늘 처음으로 달라진 형식으로.
바람이 없던 일요일. 조용했다.
내일 아침이 기다려졌다. 이 감각이 무엇인지 이름을 붙이기 전에, 그냥 두기로 했다.
— 다음 화에 계속